<Bar 來夢來人> (2) - Bar 라임라이트

1998~1999년쯤 유학 가기 전 대학원 다닐 때 일이다. 어느 만화방에 갔다가 <BAR 來夢來人>이라는 일본 만화를 접했다. 정식 발매되지 않은, 해적판 번역본으로 기억한다. 내용은 "來夢來人"이라는 바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중심이 된다. 거기서는 신비한 분위기의 여성 바텐더 사라가 사연이 있는 손님에게 상황에 맞는 신비한 미지의 칵테일을 만들어 주는데, 이를 마시면 곧 그 손님의 소원이 현실에서 이루어진다. 다만 그렇게 변화된 사태의 결말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해피 엔딩으로도 끝나기도 하지만, 대개 성격의 단점과 욕망이 상호작용하여 나쁜 결과나 비극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약간 <펫 숍 오브 호러> 비슷한 느낌?). 행정고시 합격한 한 젊은이가 사기를 당했으나 이곳 칵테일의 도움을 받고 문제를 해결한 다음, 잠시 임용을 미루고 "사람을 알기 위해" 이 바에서 견습으로 일하면서 그의 관점에서 줄거리가 진행된다. 그는 나중에 유명한 마스터 바텐더가 된다. 이러한 줄거리와 병행해서 각 회에서는 유명한  칵테일 한 가지가 소개되고는 한다. 

당시 만화방에 앉아 해적판을 서너 권 정도 본 것 같다. 아마 그 정도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후 곧 유학을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오랫동안 이 만화를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귀국 후 계기는 알 수 없지만 우연히 이 만화책 생각이 났다. 알아보니,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보았던 해적판은 구할 길이 없었고, 그 사이 정식 발매 판본이 있었으나 이미 절판된 상태였다. 다만 정발판 표지로부터 "來夢來人"의 음독이 "라임라이트"(ライムライト)임을 알게 되었다. 한자의 뜻도 분위기와 잘 어울렸지만, 그 독음도 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당시는 지금처럼 인터넷 헌책방이 활발히 운영되던 시기도 아니었기에, 할 수 없이 일본에 원서를 주문해 받아 끝까지 읽었다. 나중에는 좀 시시하게 끝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보았다. 대개 그 이름도 모르는 전혀 유명하지 않은 만화지만 젊은 시절 추억과 결부되어 그런지 나는 이 책이 좋았다. 

얼마 전에 정말 우연히 이 책이 다시 떠올라 검색해 보니 어느 인터넷 헌책방에서 정발판 전권 깨끗한 책을 매우 싸게 팔고 있어 구입했다. 이 만화는 아마도 언젠가 한 번 쯤은 다시 볼 것 같아서. 그리고 어쨌거나 나는 우리 말로 된 책이 읽기 편하다. 그리고 재주는 없지만 진토닉이라도 한 잔 만들어 함께 하겠다. 일본 책은 적절히 처분해야 할 것이다. 도서관이 기증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는 없겠지.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전에 어떤 분께 들은 바로는, 법학도서관 김도창 선생님 기증 장서 중에 무협지들이 있다고 한다.)


샤이델, <불평등의 역사> 책에서

샤이델의 <불평등의 역사>(에코리브르, 2017)를 재미있게 읽었다. 원서 제목인 The Great Leveler가 보이듯, 세계사에서 경제적 불평등을 대폭 완화시키는 사건 유형을 살펴보고 종합하는 책이다. 평소에 이 책에서 주장되는 것와 비슷한 생각을 문제의식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외국 잡지에서 서평이나 책 소개를 보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번역본이 나올 때 바로 사서 리스트에 올려 놓고 있었다. 번역은, 일부 오역은 있지만, 대체로 읽고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필자의 주장은 역사적으로 대폭적인 불평등 감소를 야기시킨 사건 유형으로서 비교사적으로 의미를 가지는 것은 대규모 동원 전쟁, 폭력적 혁명, 국가 내지 체제 붕괴, 대유행 전염병 네 가지이며, 그것이 가하는 폭력성이 크면 클수록 그 효과가 컸다는 것이다. 특히 이 네 가지는 서로 충첩해서 나타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하기도 한다(예컨대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진 러시아 혁명), 이에 대해 다른 사건 유형 예를 들어 토지 개혁, 채무 면제, 경제 위기, 경제 성장(쿠츠네츠 가설), 민주주의, 교육 신장 등은, 앞의 네 가지와 연결되는 경우 효과를 가지지만(예컨대 제2차 세계대전과 공산주의 위협 하의 남한, 대만 등의 토지 개혁), 단독으로는 효과가 없거나 크지 않았고, 있더라도 대부분 단기간에 그쳤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20세기 다수 국가의 평등화 경향은 20세기 초중반의 대규모 동원 전쟁 및 폭력 혁명의 영향이었고, 최근의 불평등 증가는 강력한 평등화 기제인 네 가지가 장기간 억제되어서 발생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인식은 세계대전과 혁명의 영향으로부터 다소 떨어져 있었던 남미에서 20세기 내내 지속적으로 불평등이 유지/상승하였고, 최근 교육이나 재정 조치에 따른 일부 완화 경향도 단기적이었다는 사실로부터도 반증된다고 한다. 저자는 이상의 내용을 고대 문명부터 최근의 사건까지 각종의 역사통계적 자료를 가지고 입증하려고 시도한다. 장래의 전망에 대해, 이 책은 강력한 평등화 기제 네 가지는 앞으로 반복되기 어렵기 때문에 대폭적인 불평등 감소는 일단 쉽게 기대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조심스러운 하지만 우려스러운 전망으로 마무리된다. 

역사가가 아닌 나로서는 이러한 해석이 얼마나 확실한 것인지 스스로 평가할 능력은 없다.  일단 개인적으로 전부터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에 비추어 꽤 설득력 있게 읽기는 했다. 다만 이 책은 너무 많은 역사적 사례를 논하면서 데크니컬한 서술이 많아 다소 지루한 면은 있다. 이 점만 참을 수 있으면 한 번 읽어 볼 만한 것 같다. 샤이델은 최근 저술 Escape from Rome에서 유럽이 경제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앞서나가게 된 중요한 원인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제국의 멸망 후 곧 제국이 재건되지만 서유럽에서는 로마 제국 이후에 분열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다는 점을 들면서 이로부터 발생하는 활력을 들고 있다는데, 이 책의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도 번역되면 좋겠다.


고염무, <일지록>

고염무, <일지록>, 윤대식 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09.

후대 사람들의 책을 보자면 양은 더 많아졌는데 오류도 더 많아지고, 만드는 속도는 더 빨라졌는데도 더 전해지지 못한다. 그렇게 된 이유는 책 만드는 일을 너무 쉽게 봤고 이름을 드날리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28면)

백성을 구제하는 일은 윗자리에 있는 사람의 책임이요, 백성을 구제하자는 말을 다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랫자리에 있는 사람의 책임이다(救民以事, 此達而在上位者之責也, 救民以言, 亦此궁而在下位者之責也).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서인(庶人)들이 구구하게 말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정교와 풍속이 진실로 다 선하지 않아도 곧 서인들이 구구하게 말하는 것을 허락했던 것이다. (29면) 

존귀한 자와 막중한 소임만 쌓여 윗자리에 머무르니 아랫자리는 그 직을 함께 나누는 자가 없다. […] 그러므로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작은 관직이 많은 것은 세상이 흥성한 것이고 큰 관직이 많은 것은 세상이 쇠퇴한 것이다. 흥망의 길은 이로부터 유래한다. (40-41면)

천하의 일은 법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법제가 번잡해지면 교활한 무리들이 모두 법을 가지고 거래할 수 있으니 비록 현자가 있어도 저절로 법이 운영될 수 없다. 이것이 국사가 날로 그릇되는 까닭이다. 두원개(杜元凱)의 <좌씨전> 해석 또한 잘 지적하듯이 “법이 행해지면 사람이 법을 따르고 법이 실패하면 법이 사람을 따른다(法行則人從法, 法敗則法從人)”고 했다. (48면)

천하에 가장 시급한 일은 시작의 여려움을 생각해서 만년의 이익을 없애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71면)

법이 한결같지 않으면 백성들에게서 교묘함이 생긴다. 왕자가 나타나면 저울질을 같게 하고 경계를 바로잡는 데 먼저 힘쓴다. (75면)

나라가 망하는 것[亡國]이 있고 천하가 망하는 것[亡天下]이 있다. 망국과 망천하를 어떻게 구분하는가? 말하자면 “나라의 주인을 바꾸고 연호를 바꾸는 것이 망국이다. 인의가 막히면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고 끝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게 되니 이를 망천하라고 한다.” 위나라와 진나라 사람들의 고상한 이야기들이 어찌하여 천하를 망쳤는가? <맹자>의 이른바 양주와 묵자의 학설이라는 것은 천하에 부모도 없고 군주도 없게 하여 짐승의 세계로 들어가게 한다고 했다. 정시(正始) 이래로 대의가 천하에 두루 밝혀지지 못했다. […] 대체로 사설과 정설은 양립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천하를 보존하는 것[保天下]을 안 뒤에야 그 나라를 보존하는 것[保國]을 안다. 나라의 보존은 군주와 신하, 그리고 귀족들이 도모하는 것이지만, 천하의 보존에는 필부와 같이 비천한 자들도 더불어 책임이 있다. (103-104면) 

지금 과거를 위해 배우는 것은 대개 모범 답안지에만 익숙한 말이니 그 것으로 대의를 통달할 수는 없다. 이 (주역의) 경이 이해할 수 없는 책이 되어 <주역>은 사라졌다. (1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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