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니를 빼다 잡생각

나는 여지껏 젖니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물론 이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교 다닐 시절 치과에서 정기검진을 받다가, 놀랍게도 젖니 하나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의사 선생님은 말하였다. 그 부분의 영구치가 없어 여지껏 젖니가 남아 있게 된 것이라고. 따라서 당분간은 이 젖니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으나, 언젠가는 빠지게 될 터이니 그 때가 되면 새로 이를 해 넣어야 할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나이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왼편 아래쪽에 젖니 하나를 가지고 살아왔다. 물론 어렸을 때 충치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나마 버티고 있었던 젖니의 삼분의 일 정도는 아말감에 의해서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젖니가 한 2~3년 전부터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점차로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한 이 이빨과 작별할 시점이 다가온다는 것을 예감하게 되었다. 그러던 오늘 오후, 출출함을 느껴 중국식 다과를 몇개 먹고 있었는데, 씹는 과정에서 돌을 씹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과를 목에 다 넘긴 이후, 젖니의 아말감이 떨어져 나갔음을 혀의 감촉으로 느껴야 했다.


집안에서 잘 아는 치과에 허겁지겁 달려갔다. 예상하였던 바이지만, 이 젖니에 다시 아말감으로 '땜방'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흔들리고 있었던 이빨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거기에 치료를 하는 것이 어렵고 또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의 젖니를 빼고, 새 이를 박아야 하는 것으로 낙착되었다. 잇몸에 마취주사를 맞고 기다렸다. 입안에 마취약의 쓴맛이 감돌았다. 그러나 마취를 한 보람도 없이, 젖니는 너무나 쉽게 빠져 버렸다. 하긴 뿌리가 있어 살에 박힌 이빨이 아니라, 살짝 살 위에 '얹혀' 있던 이빨이니 간단한 힘으로도 빠지는 것이 당연했다. 어렸을 때, 실에 묶어 빼던 그 이빨 아니던가.


솜을 물고 밖으로 나오는데, 나이 서른 다섯 먹어 이제야 젖니를 다 잃었다는 생각에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남들은 일찍감치 영구치를 얻어 성장했는데, 나는 여전히 젖니를 가지고 성숙하지 못한 상태로 있었던 것일까.


학교로 되돌아 오는 동안 왼편 입술과 잇몸에 마취가 남아있어 매우 둔탁한 느낌이 들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찬 물을 마셨는데, 컵과 물의 차가움이 오른쪽 입술에는 느껴지지만 왼쪽 입술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왼쪽 입술은 마치 내 몸이 아닌 것 처럼, 죽은 신체부분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순간 明道(程顥; 북송시대의 철학자)의 말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의서에서는 수족이 마비되는 것을 '不仁'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仁'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仁'이라는 것은 천지만물을 일체로 보아 천지만물을 내 몸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천지만물이 자기의 몸과 일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仁'을 베푸는 것이 어느 곳엔들 미치지 않는 곳이 있겠는가? 만약 자기에게 '仁'이 없다면 천지만물과 자기와의 교섭도 없어진다. 이는 손발이 '不仁'하게 되면 기가 소통되지 않게 되어 손발 모두가 내 몸에 속하지 않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程氏遺書> 卷第二上 '二先生語') 신체의 마비현상에서 천지만물에 마음쓰는 도리를 생각해 내는 사람도 있으니, 쓸모 없는 경험이란 없다 보다.


보잘 것 없는 젖니 하나이지만, 버리지 말고 달라고 해서 까치에게 새 이빨을 빌며 지붕 위에 던지기라도 했어야 했나 하는 쓸데 없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없는 영구치가 날 리는 없는 일. 새로 이빨을 박는데 들어갈 비용을 생각하니 잡념은 깨어지고 의식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2006.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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