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기 어렵다" 잡생각

가끔 글을 쓰다보면 도저히 말이 안 되어서 터무니 없는 주장을 만나게 된다. 순리 대로라면, 비판을 하면서 "이런 주장은 말도 안되는 넌센스다"라고 쓰는 것이 맞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작으며, 그 안의 학계는 더욱 작다. 전에 어느 래퍼가 미국에서는 누구를 대놓고 디스해도 평생 안 만나고 살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게 불가능해서 그렇게 대놓고 디스하는 랩을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을 보았는데, 이는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괜히 공격적인 언사를 쓰는 것은 공격 받을 빌미를 제공하고, 그런 비판을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보다 강한 우리나라(여담으로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안 그렇다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거기도 마찬가지이며 단지 정도가 우리보다 상당히 덜하다고 생각한다)에서는 특히 그렇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면서도 상대방에게 반격의 건수를 주지 않는 그런 서술방법이 필요하게 된다. 그렇다. 일정한 한도에서는 레오 스트라우스가 언급한 적이 있는 중의적 글쓰기가 요구되는 것이다.

전에 요벨의 <스피노자와 다른 이단자들>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 요벨은 스피노자가 그러한 중의적 서술의 대가라고 설명하면서, 예로 다음의 일화를 들었다. 스피노자는 올덴부르그에게 보내는 한 편지(Ep. 73)에서, 교회사람들이 성육신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 대해 "나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monui expressè, me, quid dicant, nescire)고 말한다. 요벨에 따르면 이 말은 중의적이다. 즉 한편으로는 똑똑한 내가 보기에 그들이 말하는 것은 엉터리여서 이해될 수 있는 수준에 미달한다는 의미로도 들릴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멍청한 내가 보기에 성육신의 교리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라는 뜻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이러한 주장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내가 애용하는 구절의 하나가 되었다.

덧글

  • 지나가는 입법종사자 2018/08/22 08:31 # 삭제 답글

    저도 애용하고 싶은 말입니다. 씁쓸하지만 좁은 한국에서 살기 위한 지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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